첫번째 창업을 통해 가장 뼈저리게 깨달은 점은 타이밍은 생각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창업을 마음 먹었을 때, 거시적인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점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도전했다.
당시에는 좋게 말하면 패기, 안 좋게 말하면 객기로 나만 잘하면 주변 상황에 상관 없이 얼마든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믿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독립 변수가 아주 적거나, 소수가 하는 아주 작은 게임이라면 충분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창업은 이보다 훨씬 복잡한 게임이고, 예기치 못한 다양한 변수들이 영향을 준다.
한 때는 이런 생각을 패배자 마인드라고 치부했다.
달성하지 못한 목표는 ‘원래부터 어려운 것이다’라고 주변 상황에 대해 핑계를 대는 나약한 정신 상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것이 내 의지대로 될 것이다라고 믿고,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가능하다는 생각이 오히려 굉장히 자만한 태도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듯이 모든 일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고, 세상에는 수억만 가지의 상호작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서핑을 예로 들면 이해하기 쉽다.
바람이 잔잔하고 파도가 없는 날, 굳이 바다로 나가서 즐겁고 멋진 서핑을 하기 매우 어렵다.
물론 이런 날에도 초일류 서퍼들은 남들보다는 나은 서핑을 즐길 것이다.
그런데 일단 나는 초일류 서퍼가 아니다.
초일류를 지향하는 마음과 현재 자신의 상태를 냉철하게 받아들이는 건 다른 문제다.
항상 초일류 서퍼를 지향하고 노력하지만, 현재의 객관적인 상태는 이와 거리가 멀다.
여기서 더 재밌는 점은, 실제 초일류 서퍼들도 이런 날에는 서핑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초일류 서퍼가 되기 위해 가장 먼저 갖춰야 할 자질은 좋은 파도를 보는 눈을 기르는 것이다.
실제로 서퍼들 영상을 찾아보면 대부분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자신의 기량을 충분히 뽐낼 수 있는 파도가 올 때까지 작은 파도는 계속 지나쳐보낸다.
타이밍을 재고 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보디빌더로 성공한 이후, 헐리우드 배우가 되기 위해 오랜기간 동안 준비했지만 초기에는 모두 거절당했다.
당시 헐리우드에서 원하는 배우 상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묵묵히 오디션을 보면서 기다렸고, 마침내 터미네이터라는 영화를 만나 세계적인 배우가 되었다.
아놀드 슈워제너거의 이야기의 함의는 ‘존버하면 성공한다’가 아니다.
그는 이미 보디빌더로 탄탄한 커리어를 만들었고, 이를 기반으로 다른 영역에 도전한 것이다.
대신 자신의 꿈인 배우에 대한 열망을 버리지 않았고, 계속해서 시장을 주시하고 도전했다.
그냥 무작정 존버하면 말라 죽는다.
서핑으로 비유하자면, 파도가 안 좋은데 계속 바다에 나가있다가는 저체온증이 올 수 있다.
날씨가 안 좋다고 판단되면 해변에서 밥 먹고 휴식하고 보강 훈련도 하면서 다음을 준비하는 것이 훨씬 낫다.
대신 이 때 주의할 점은 바다에서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항상 파도를 주시하다가 때가 되면, 바다로 뛰어들어야 한다.
물론 파도가 좋아졌을 때, 이미 바다에 들어가 있으면 첫 번째 파도에 올라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좋은 타이밍이 되었다면, 파도는 한 번에 끝나지 않으니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두 번째, 세 번째, 어쩌면 더 크고 좋은 파도가 계속해서 올 것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 때를 위해 에너지를 비축하고 준비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선택이다.
배수진을 치고 힘든 시기에도 꿋꿋이 버티다 크게 성공하는 대반전의 스토리를 종종 들을 수 있다.
멋있고 가슴 뛰는 이야기다.
하지만 버티다가 부러지고, 끝내 회복하지 못하는 비참한 이야기는 아무도 하지 않고 듣지 않는다.
적어도 나는 낭만에 사로 잡혀, 인생을 담보로 도박을 하고 싶진 않다.
겸허하고 객관적으로 현실을 받아들이되, 가슴 한 켠에는 언제나 뜨거운 출사표를 품고 있다.
항상 파도를 주시하고, 해변에서 너무 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면서도 지금 발 붙인 곳에서도 늘 최선을 갈구한다.
날씨는 계속 바뀌고, 파도는 반드시 온다.
중요한 것은 그 때가 됐을 때 얼마나 준비되어 있고, 용기 있게 뛰어들 수 있는 지다.
Timing really matters, so stay tuned. (끝)